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점점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억하고 싶은 풍경들을
아무 의미 없이 담아 보았다.
나중에 나이먹어 따뜻한 구들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며 때론 따뜻한 차도 한잔 마시며
그렇게 사는 것이 욕심일까.....,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점점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억하고 싶은 풍경들을
아무 의미 없이 담아 보았다.
나중에 나이먹어 따뜻한 구들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며 때론 따뜻한 차도 한잔 마시며
그렇게 사는 것이 욕심일까.....,
며칠 몸이 안 좋았다. 먹은 것이 잘못되어 명치 끝에 꽉 막혀 내려 가질 않는다. 아무리 소화제를 먹어도 도무지 낳질 않는다. 그렇게 끙끙 바보처럼 굴다가 결국은 병원에 가고 말았다. 나도 참 바보다. 진즉에 병원에 가면 되는 것을 며칠을 약 만 사먹고 견디려 했으니 내가 바보가 맞는 모양이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혼자 끙끙거린다고 나아지질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늘 이 모양이다.

내일이 크리스마스 인데 거리는 조용하다. 어릴적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 때에 만 이브날 저녁 교회에 가서 연극도 하고 노래도 하면 먹을것도 많이 주었다. 평소 집에서 잘 먹지 못하는 과자랑 빵 그리고 학용품 등을 주니까 교회는 그래도 열심히 다녔다.
믿음 뭐 그런거 보다. 그저 먹을 것 이랑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교회를 다닌 것 같다. 지금은 종교에 대한 기억들이 희미해 진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다 보니 많이 지치기도 하다.
무엇을 해야지 하다가도 포기해 버리고 또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그렇게 매일 매일의 연속이다. 내가 믿고 싶어 노력을 하면 그쪽에서 배신을 한다. 무언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바로 태도가 바뀌는 그들이 정말 답답하다.
그래서 요즈음은 사람이 참 싫다. 싫어하면 안되는데 사람이 정말 싫다. 왜 이렇게 까지 사람에게 실망을 하는 걸까? 심지어 내가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제일 먼저 개가 반긴다. 이넘은 변치 않고 꼬리를 흔들고 반갑다고 끙끙거리고 애교를 부린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표정이 변한다. 그리곤 배신을 한다. 또 오히려 남들보다 더욱더 증오를 한다. 단지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는 그 이유하나로.. 그런 점에서 정말 미칠것 같다. 그러면 안되는데도 자꾸 그렇게 한다. 그것이 사람인 모양이다. 사람에게 상처 받고, 사람에게 실망을 자꾸 한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잉크도 이젠 적당한 가격에 적정가격으로 판매 하였으면 좋겠다. 솔직히 너무 비싸다. 이번에 정품 구입하고 다음엔 리필 사용해야 지 별 수가 없다. 정품 사용만을 주장하지 말고 잉크 값을 현실에 맞게 낯주어 주었으면 좋겠다...나만의 생각이다

산을 올랐다. 겨울 산은 생각보다 바람이 많이 차다.
간만의 산행이라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산을 올랐는데
겨울 산은 그대로 춥다.
그리고 너무 쓸쓸해 보인다.
잎사귀를 떨 군체 몸을 떨고 있는 나무들이 애처롭다.
낙엽은 오솔길에 쌓여 바스락 이고
길을 걷는 내내 콧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 진다.

산 능성이 를 오르니 잠시 따뜻한 햇살이 그리워진다.
같이 간 우리 집 딩굴양은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마냥 즐겁다.
하긴. 나 먹을 것은 안 챙겨도 딩굴양이 먹을 것은 챙겨가니
며칠을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저 또한 간만에 스트레스도 풀고 개운 했을 것이다.
오늘은 정상을 들렸다가. 약 400m 정도를 내려가면 있는
상사 바위를 잠시 들렸다.
그곳에서 내가 조금 전에 걸어온 정상을 바라다본다.
새삼스럽게 발아래 펼쳐지는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 딩굴양도 신났다.

그리고 눈앞 산허리에 작은 산사가
보기에도 좋게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에 들렸는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작은 동굴법당이 있어 너무나 좋았는데
시간이 나면 또 한 번 들려야지 다짐한다.
손에 잡힐 듯 들어오지만
그 능성은 건너편 능성이다…….
오랜만의 산행에 무릎이 약간 불편해 진다…….

바스락이는 소리에 놀라 발끝을 보니
곱디 고운 단풍잎이 바람에 몸 구르다가
내 발끝에 딱걸려 가던길을 멈추었다.


바람이 몹시 분다.
차가운 바람에 자꾸 옷깃을 세운다.
하지만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마음한 구석에 휭 하니 생긴 구멍으로 바람은 더욱 세차게만 들어 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을인가 했는데 어느새 한겨울속으로 들어와 있다.
그렇게 나무들은 가지를 떨구고 살려는 몸부림을 친다.
나무는 홀가분하게 벗어던지는데
사람들은 더욱 더 입기에 바쁘다.
오늘 건강검진 결과 에서 혈당수치가 경계치라고 나온다.
조심하란다.
어느새 나도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바로 건강아니겠는가.
춥다. 바람이
자꾸 가슴안에서 분다.
마음속 저 깊은곳에서 따뜻한 온기를 끌어 올려야 하는데
자꾸 위축되어 간다. 어느새 나도
찬바람 휭 하니 발끝을 톡 친다.
잎사귀는 우수수 몸을 떨어뜨린다.
고즈넉한 절 마당엔
떨어진 낙엽들만 바람과 노닥거리다가.
내 발자국 소리에 어디론가 후다닥 몸을 숨긴다.
맑고 시린 약수 돌 곽을 적시고
부처는 어디가고
처마 끝 거미줄에 낙엽 하나만 대롱이더라.


장춘사의 싸리문이 보고 싶어 무릉산을 찾은 날 날이 꽤 추웠다. 소매 사이로 파고드는 찬바람 때문에 가슴까지 시리다. 하지만 싸리문은 여전하고 작지만 정감 있는 일주문을 들어서자 마당엔 바람과 떨어진 낙엽들이 한참 장난질에 빠져 정신이 없었다.
바람이 조금 힘을 주면 하늘에서 우수수 낙엽 비가 내린다. 회색빛 산 능선에서는 차츰차츰 겨울을 몰고 장춘사 대웅전 처마 끝으로 몰려온다. 그곳에 부처도 중생도 없더라. 그저 바람과 낙엽과 댕그랑 이는 풍경소리만 있더라.......,

참 세월이 덧없다.
무엇을 해야지 하다가 보면 어느새 그 세월은 지나가고 있다.
아차, 하면 이미 늦다.
그래서 나름 긴장을 하는데도 번번이 기회를 놓친다.
이번엔 나름 무언가를 해야지 했는데
어느새 2009년도 한 달 남았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 할 때 가 어쩜 기회가 아닐까 싶다.
생각을 바꾸어 아직 기회가 한 달이나 남았다. 라는
역 발상을 하려고 한다.
정말 그러고 보니 한 달간이나 남았다.
이젠 놓치지 말고 차근차근 생각했던 일 들을
진행하려 한다.
그러면 세월이 아무리 덧없어도
역 발상 앞에서는 안 되겠지.
자 앞으로 한 달 남은 2009년을
당신은 어떻게 보낼 것인가? 결정은 순전히
당신 몫이다…….
한탄 만 할 것인지 아님
주어진 한 달을 정말 알차게 보낼 것인지.
순전히…….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마음이 스산하다벌써 가을이 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와
내가 입은 옷들이 더욱 두꺼워 진다.
그렇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월을 오고감을 반복하고
벌써 내 머리엔 하얀 서리가 내리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너 많이 늙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내가 벌써 늙었다는 소리를 듣다니.
가슴을 쓸어안고 지는 낙엽을 보며
예전처럼 애틋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렇구나.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10대 그 꿈 많을 때 나는 너무 배가 고팠고
20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난 마냥 세상을 비관만 했지
30대 언제 아이 아빠가 되어 꿈도 희망도 읽어버린 채 살고 있었지
40대 불혹 이라고 했지.
이제 조금 철이 드나 보다.
세상을 이야기 하고 세상 속에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렇게 조금 철이 드나 보다.
머리에 서리가 하나둘 내리고
버스 안에서 앉아 있어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나보다.
그래서 가을이 쓸쓸하나 보다.

2009년 11월 26일 우리 신문과 제휴를 맺고 있는 모 신문사 창간 7주년 기념행사에 참석을 했다.
식탁에는 간단한 음류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음료를 보다가 차라리 보지 말 것을 하고 후회를 했다.
음료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명실공히 행사장의 테이블을 장식하고 있는 음료수 병을 자세히 보면 알것이다.
병은 먹을 것이 담긴 용기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게 오물들이 묻어 있었다.

자 조금 당겨 보았다. 하얀 먼지 같은 것들이 보이는지.
저 병에 담긴 음료수는 깨끗한지 몰라도 그 음료를 담고 있는 병은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마시긴 해야 하는데 만약에 입을 대고 마시면 정말 불결 한 병 상태로는 절대 안될 지경이다.

자 더 확대 하겠다. 병 바닥에 묻어 있는 오물이 보이는가. 물론 테이블 상태는 모르겠다. 하지만 저런 병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공되고 있는 현실에 한방 먹은 것 같았다.
걷치레 보다 비록 작은것 같지만 저런 곳에서 그 업소의 청결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몰론 내 테이블만 그런것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테이블위의 음료수 병은 마찬가지 오물을 병에 잔뜩 묻히고 있었다.
업주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될 것이다.
작은것 부터 시작 아닐까? 사진속의 장소는 창원에서 내 놓아라 하는 유명한 곳이다.
음식도 맛이 있고 그런데 제공된 음료수 병 때문에 처음의 인상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만의 착각이고 고민일까.....,
또 하루가 간다.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시간은 흘러 그렇게 간다.
그 시간을 부여잡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어느 순간 2009년이더니 또 그 2009년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은 순간이다. 영원한 것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은 영원할 것처럼 살고 있다.
모든 것이 그 착각에서 출발한다.
분명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고 변할 것인데도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엄청난 착각 때문에 세상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내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욕심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원하지 않을 존재를 영원하다고 믿고 그 영원하지 않는 나를 위해
이런 저런 욕심들을 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나라고 하는 이 것 중에 나라고 주장할 만 한 것이 없음을 알고 나면
모든 것이다 무상함을 알게 된다.
무상하기 때문에 영원할 것도 영원해야 될 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깨달았다고 주장한다면 이 또한 깨닫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사실은 깨달았다고 할 내가 없기 때문에 깨달을 것도 없다.
그런데 무얼 깨닫고 어떤 깨달음을 얻는 단 말인가.
얻을 내가 없는데…….
모든 것은 내가 존재 한다고 믿는 것에서 부터
출발을 한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죽음이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욕심이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네가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픔과 고통이 존재를 한다.
내 몸이 생로병사 하고 윤회 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부질없는 진리를 찾는 것이다.
생로병사 할 나도 윤회 할 나도 없다.
그런데 무엇이 윤회하고 깨닫고 부처가 된단 말인가.
또 하루가 간다고 하는 이 순간 나는 존재 할 뿐
과거도 미래도 어디에도 자리 잡고 있지 않다.
다만 지금 여기에 나는 있을 뿐이다.
바로 그 찰라지간에…….

종교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분들의 종교는 기독교도 그분들 말로는 예전에 불교였다가 개종하여 지금은 기독교라고 하면서 나 더러 하나님 영접해서 구원받으라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종교이야길 하기 싫어한다.
그놈의 종교 때문에 평소에 잘 지내던 사이가 잘못하면 멀어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친구가 사무실로 찾아와 내게 하나님 믿고 구원 받으라고 이야길 시작하기에 내가 그랬던 적이 있다.
"친구야 나는 너의 종교를 존중한다. 그러니까 너도 나의 종교를 존중해다오. 우리 더 이상 종교이야기 하지 말자" 라고 그런데 그 친구는 내가 답답하고 한심한 모양이었다. 마구잡이로 하나님을 꼭 믿어야 네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다시 한 번 더 정중하게 부탁했다. 종교이야기 하지 말라고. 나도 나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나의 종교를 네게 주장하진 않을 것이니 너도 더 이상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결국 그 친구는 더 이상 종교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 이상하게 서먹서먹하게 나를 대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떻게 그 친구가 믿는 하나님이 친구 사이조차 이렇게 어색하게 만들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일까?
그런 적이 있는데 오늘도 하나님을 영접해서 구원받아라. 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물론 나도 그분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또 그분들의 믿음을 내가 설득할 필요는 없고 강요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분들과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 하려고 노력을 했다. 잘못하면 또 가까운 사람을 읽기 때문이다.

종교가 무엇이기에……. 이 처럼 사람들의 관계조차 갈라놓으려 할까? 그런 종교라면 나는 차라리 버리겠다. 사람과 사람이 친구와 친구가 부모와 자식을 형제와 자매를 원수로 만들어 버리는 종교라면 난 차라리 버리겠다. 구원이라는 맹목적인 이유로 그 믿음을 강요하는 억지스러움에 나는 참으로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나의 논리와 이야기 나의 주장은 다 필요 없다. 오직 하나님의 논리와 성경대로 살면 된단다. 무엇이 성경대로 사는 삶일까? 그리고 무엇으로 부터 구원을 한다는 것일까? 지금 여기서 이렇게 불편한데…….언제 구원 받는단 말인가. 그렇게 나중에 죽어서 가야 할 천국이라면 난 거부하겠다. 난 지금 여기서 그저 친구랑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싶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심판이나 하고 구원을 빌미로 믿음을 강요하는 그런 하나님은 난 차라리 버리겠다.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무지막지한 하나님이라면. 또 세상에 어떤 죄를 지어도 단지 자신을 믿는다는 이유하나로 천국으로 갈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천국을 거부하겠다.
태어나 죄를 지을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하고 죽어 간 간난 아이 조차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를 들어 원죄론 으로 지옥에 보낸다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또한 거부하겠다. 자신은 신이라 하면서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인간들을 단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지옥으로 보내는 신이라면 그 또한 거부하겠다.
나는 지금 여기서 행복하고 지금 여기서 웃으며 더불어 웃고 떠들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함께 위로하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을 나의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믿고 의지하고 차라리 살련다. 너무 높아 감히 쳐다보기도 벅찬 성스러운 하나님 보다.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 볼 수 있는 하나님을 나는 차라리 영접하려 한다…….
며칠 나름 많이 힘들었다. 나름 원칙을 지키고 살려고 했는데
어느 경찰의 황당한 태도에 그 원칙이 흔들리는 아픔을 격어야 했다.
사는 게 무엇이기에 곳곳에서 부딪치는 암초처럼 나를 주저앉히려는 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무능력하게 그 도사림에 그냥 당하고 만다.
이런 저런 핑계를 들이대도 나는 요즘 많이 무력해저 있다.
그리곤 그대로 그 나락에 끌려 들어가고 싶어진다.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은 무력감과 내가 뭔데 하는 나약함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 느낌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거리를 나가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웃는 사람, 떠드는 사람, 화내는 사람, 친구와 만나는 사람, 전화하는 사람 등등
다들 살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안에 있으면서도
무언가 텅 빈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요 며칠간 난 몽환 상태로 그냥 무력하게 살고 있다.
무엇을 하려고 계획을 잡았다가도
막상 하려고 하면 해서 뭐 할까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기자라고 열심히 활동해 온 내 생활이
어떤 경찰의 말 몇 마디에 처참히 망가지고
내가 살아 온 그동안의 길이 부정되어 지고
뭐 그런 것 때문에
추운 날은 자꾸 나를 움츠려 들게 한다.
그리고 세상이 왜 자꾸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지 몰라.
지워야 하는데 평소는 잘 지우는데 이번은
아마도 그 경찰의 태도에서 나의 삶이 부정되어지는 것을 느껴서 인지
상당히 여파가 오래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