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0일 금요일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내일 치워야 할 나뭇잎

소년의 집 뒤편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흩날려서 대청마루와 부엌 안에까지 들어 오곤했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등교하기 전에 떨어진 나뭇잎을 깨끗이 치우라고 하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뭇잎을 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특히 가을과 겨울에는 더욱 힘들었다.
나뭇잎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쉴새없이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마다 나뭇잎을 치우다 보니 정말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소년에게 좋은 방법을 하나 알려주었다.

그것은 나뭇잎을 미리 떨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내일 일이 줄어 들겠지." 소년은 기발한 방법에 우쭐해 졌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나무를 있는 힘껏 흔들어 댔다.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졌고.
소년은 오늘 분량뿐만 아니라 내일 떨어질 분량까지의 나뭇잎을 깨끗이 치워버렸다.
내일 분량의 나뭇잎을 치우고 나니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다음날 아침. 소년은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수북히 쌓여 잇는 나뭇잎이 아닌가.
두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깨달은 것이 있었다.

오늘 아무리 애를 써도 내일 쓸어야 할 나뭇잎은 줄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때 소년의 가슴 한구석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무슨 일이든 일정을 내 마음대로 앞 당길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 이순간과 오늘 충실하게 살 뿐이다.

2009년 10월 12일 월요일

나비

겨울이 오기전 부지런히 꿀을 마신다. 자연의 섭리로 이들은 본능적으로 겨울에 대비한다

팔용산에 노을이 진다

2009년 10월 11일 일요일 가까운 팔용산을 올라다. 저멀리 무학산을 뒤로하고 노을이 지고 있었다.

어느 가을 풍경

어느 지독한 가을 설레임을 뒤로 하고 세상을 담는다

세월

난 그동안 세월이 화살 같이 흘러간다. 하여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이 조금 들어 깨달아 보니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월을 그렇게 흘러 보내고 있었다. 또 세월이 덧없이 흘러간다고 세월을 원망했는데 알고 보내 내가 세월을 덧없이 흘러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월은 귓가를 스치는 바람처럼 그렇게 항상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가는 시간에 아무른 대책 없이 탓만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고 머리엔 희끗희끗 서리가 내려지는 것을 세월 탓 을 할 것인가?

세월이 흘러가는 것은 내 마음이 바쁜 것이다. 바쁜 마음으로 인해 조급해 지고 조급한 마음이 세월을 탓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지금에 머물라 말하고 싶다. 지금 여기서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자에게는 세월이 흘러가지 않는다. 아니 삶도 죽음도  영원도 어제도 그제도 내일도 모레도 있을 수가 없다.

단지 지금 이 순간만이 주어질 뿐이다. 이 순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뿐…….찰라 나는 다만 윤회할 뿐인 것이다. 조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른 나이다. 그러니 그런 나에게서 과거의 나를 다시 찾을 수도 없고 또 미래의 나를 기다릴 수도 없다 언제나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의 나는 언제나 지금 현재 이기 때문이다.

행복도, 사랑도 삶도 죽음도 고통도 모든 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내게 그 모든 것은 주어진다. 그래서 불교 에서는 지금 여기서 깨달아 라고 하는 것이다. 또 지금의 나를 알아차림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의 나를  깨달아 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모든 생로병사가 주어지는 것임을 깨달아  지금 여기에 충실하다면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탓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내 탓이요 하고 나의 무지로 지금을 현재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면 그가 바로 깨달은 자 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2009년 10월 11일 일요일

장미

마산시청 장미 전시회에서

고성 공룡엑스포에서

다른사람을 탓 할 필요가 없다

 마산 항

어떤 문제에 있어서 나는 많이 부족했다. 무엇을 하려고 하다가 어떤 벽에 부딪치면서 나는 때론 포기 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면서 나는 점점 부족함을 느낀다. 내가 부족 한 것이다.

그런 내가 다른이를 평 한다느 것이 우스운 것이다. 다른사람의 모자람을 찾아 지적하는 것이 어찌 가능한 것일까? 참으로 내가 부족한데... 그래서 요즈음은 다시 책을 손에 잡는다. 실제 머리속에 아무것도 남아있지를 않는것 같다.

마치 텅비어 버린것 처럼 무엇을 말하려 해도 예전의 나는 그래도 술술 잘나왔는데 지금은 이야기를 하다가도 내가 지금 무슨이야기를 하지 하고 갑자기 기억에서 무언가가 사라짐을 느낀다. 아마도 머리속이 비어있어서 일것이다. 책이란 바로 그렇게 머리속의 에너지를 주는 양분인 것이다.

요즈음은 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수가 없다. 도무지 생각이라는 것이 나질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나의 지식이 고갈되어 한계가 온 것 같다..그것이 슬프다. 제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돈 안되는 일만 하고 있다. 또 아무도 알아주지도 없는다. 그저 있으면 아는체 해 주는것이 고작이다. 그것이 나의 현재다....휴

어느 노모의 고단한 삶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폐지를 줍는 노모 가 한분 계신다. 우리 집은 이분을 위해 일부러 집 마당 한편에 따로 이런 저런 고물들을 모아 두었다. 때가 되면 이분이 가져가도록 한다.

오늘도 어느 날과 마찬가지 함께 있는 사람의 가계로 출근을 하는데 그 노모 가 집에 고물 모아 두었냐고 물어 보신다. 지금 얼마 모아두지 못했다고 하자. 그럼 나중에 가지러 가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잠시 뒤 함께 있는 사람이 내게 그런다. 저 할머니도 아들 때문에 참 딱하다고 혀를 끌끌 찬다. 그러면서 그 노모 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 해준다.

그 노모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엊그제 며칠 동안 모아둔 파지들을 모아 고물상에 가져다주었다고 말하자 옆에서 같이 이야기 하시던 분이 그렇게 가져가면 얼마를 버느냐고 묻자 6만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라고 말씀하셨단다. 그 돈은 그러니까 노모의 생명 같은 돈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말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많이 모으셨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분이 그러신다. 둘째 아들 놈이 5만원인가를 가져가고 없다고.

그 말을 전해 듣는 순간 가슴에서 무언가가 확 올라왔다. 그 노모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둘 있는데 첫째도 속을 썩이고 둘째는 더욱더 속을 썩인다며 할머니가 폐지 팔아 돈이라도 받는 날이면 귀신같이 찾아와 그 돈의 거의 전부를 뺏어간다는 것이다. 하루 몇 백 원도 벌고 운이 좋아야 몇 천 원씩 버는데 그것마저 그 노모의 몫이 아닌 것이다.

그것도 장성한 아들 둘이 노모를 부양하지는 못해도 어떡해든 살아보겠다는 자신의 노모의 생명줄마저 뺏어 가는 것이다. 그 노모는 아들이 있기 때문에 정부로 부터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자식들은 자신의 노모에게 아무른 도움도 되질 못하고 오히려 짐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노모의 구부정한 허리와 주름지고 거뭇거뭇 피어나는 검버섯이 보이는 얼굴에서 삶의 고단함이 진하게 베어 나온다. 석양 아래 쉬고 계시는 그 노모를 보면서 나는 삶의 의미가 궁금하다. 그 노모에게 자식은 어떤 의미이며 그 자식들에게 그 노모는 어떤 의미 일까?

단지 부모 자식이기 때문에 노모의 구부러진 허리로 주워 모은 땀과 노동의 대가를 아무른 대가 없이 내어주는 어머니의 마음은 무엇일까? 내 모습을 되돌아본다. 나의 어머니는 내 나이 다섯 살 때 하늘나라로 가셔서 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의 의미를…….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그저 어디선가 살아계신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 고 위안이 되고 의미가 되는 존재가 아닐까?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일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원래 그래야 하는지 내가 부모 된 지금까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무엇이 세상을 바르게 사는 것일까?

요즈음 많이 힘이 든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세상이 나를 많이 힘들게 한다.
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바르게 살려고 하는 것이 힘든 것인지도 모르고 또 무엇이 나쁘게 사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왜 이렇게 바르게 가는 것이 힘이 드는지 그것을 나는 잘 모르겠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온갖 나쁜 일 하고도 잘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또 자신들의 잘못을 잘못이라고인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변명과 이유로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고 한다. 그래서 더욱 힘이 든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높은 데로 높은 데로 올라간다.
권력과 명예를 잡기만 하면 그들에게는 과거의 잘못이나 그런 것들은 다 묻어 둔다.
또 그들 곁에는 혹시 하는 이들이 모여들어 그를 떠받든다.
그러니 잘못이 있어도 다 용서가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일단 돈이 있어야 되고  돈이 있으면 권력을 지려고 하고
권력이 있으면 또 명예를 함께 가지려 한다.
그들이 사람인지는 몰라도 보이는 세상에서는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안타깝다. 그들이 잠시의 영화가 영원할 것처럼
수많은 사람을 절망하게 하고 안타깝게 하고 또 좌절하게 한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세상을 위한 길인지 무엇이 똑 바로 사는 것인지그런 모든 것들이다 혼란스럽다.
권선징악의 근본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돈과 권력이 있으면 용서가 되는 세상
그런데 그 용서를 누가했단 말인가 그들이 지은 죄를 누군가는 그런다.

지금 세상에 만연하는 종교에서는그들의 신이 모든 것을 용서하고 대속하신다고
정작 용서 할 자들에게는 용서를 구하지 않고 신이 용서를 해 준단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만의 잔치로 세상의 죄에는 무감각해진다.
신을 믿고 그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일까?
무엇이 세상을 바르게 사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너는 내 남자(한혜진)

 2008마산국화축제전야제 한혜진씨의 너는내남자 마이뉴스코리아 원문보기

싸이렌(바비킴 & 부가킹즈)

 2009년마산국화축제전야제,싸이렌(바비킴 & 부가킹즈) 마이뉴스코리아 원문보기

Tic Tac Toe(바비킴 & 부가킹즈)

 2009마산국화축제전야제 Tic Tac Toe(바비킴 & 부가킹즈) 마이뉴스코리아 원문보기

You're My Everything (바비킴)

 2008마산 국화축제전야제 You're My Everything (바비킴) 마이뉴스코리아 원문보기

바비킴의 고래의 꿈

2008년 마산국화축제 전야제 마이뉴스코리아 기사보기

2009년 10월 2일 금요일

제 자리에 그냥 두었다면

어제 시내에 볼 일이 있어 시내버스를 타고 나갔다. 비록 오래된 차지만 차를 소유하고 있는데 가까운 곳은 가능한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버스에 자리를 잡자 마침 내 눈에 바로 이 비상용 해머가 눈에 들어 왔다. 요즈음 거의 모든 버스에 장착되어져 있는 것이고 신차가 출하 될 때 의무적으로 장착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 해머는 글자 그대로 비상용 해머 인 것이다. 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작지만 끝이 뾰족한 망치를 그 망치를 저곳에다가 비치해 두었다가 비상시 유리문을 깨고 탈출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비상용 해머가 버스를 아무리 둘러 봐도 제대로 장착된 곳이 없다. 난 버스회사에서 비치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호기심 많은 사람의 소행으로 단정 짓지도 않겠다.


다만 비상용 해머의 용도는 비상시에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비상용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자동차 보험이다. 만약이 사태를 대비하는 하나의 보험인 것이다. 자동차보험이 지금 당장 필요 없다고 자동차 보험이 필요 없다고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보험에 들고 또 나라에서는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비상용 해머도 보험처럼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소한 호기심 때문에 혹은 회사 측의 안이한 판단 때문에 정말 필요로 하는 일이 생겼을 때 그때 제자리에 없다면  상상하기 싫은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그런데 그 대상이 바로 나라면. 그 땐 얼마나 원망스러울 까?


그럴 땐 나의호기심으로 인해 회사의 무책임함으로 인해 심지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해머는 제자리 있을 때 그 역할을 다한다. 제일 좋은 사용법은 한 번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그 차량과 함께 폐차 될 때 까지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 와 같이 없는 것처럼 그 자리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참 많다.  소방대원들, 군인들, 경찰들, 이들이 제발 일 년 내내 놀고먹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들이 필요 없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대한민국에 나는 살고 싶다. 이들이 놀고먹는 대한민국에서 우리 모두가 살았으면 좋겠다.


버스 안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해본다. 작은 해머 하나의 역할에 사람의 목숨을 몇을 구할지 모르는 소중한 존재임을 안다면 아마도 사소한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에 제자리에 두어야 할 해머를 가져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있으면서 비치하지 않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역할을 다한다면 그것이 최고다 그런 작은 역할들이 모여 이 사회가 지탱을 하기 때문이다. 그냥 제자리에 두는 것이 바로 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인간은 결국 자연에서 퇴출 될 것이다

며칠 전부터 법정 스님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는 제목의 명상에세이를 읽고 있다. 우리가 망각하고 사는 것들을 조목조목 잘 지적해 주고 있다. 법정 스님의 잔잔한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고요한 숲에 들어 있는 것 같다. 스님의 글에서 나는 세상이 왜 적막한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곳에 존재해야 할 존재들이 사라지고 다만 껍데기만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적막하다.

숲에서 숲의 주인 인 새들이 마음껏 뛰놀고 지저귈 수 있다면 또 그 한 자리에 사람도 있어 함께 더불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님은 이렇게 적고 있었다. " 새가 깃들지 않는 숲을 생각해 보라. 그건 이미 살아있는 숲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생기와 그 화음을 대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삶 또한 크게 병든 거나 다름이 없다.


세상이 온통 경제, 경제 하는 세태다. 어디에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삶의 가치가 있는지 곰곰이 헤아려 보아야 한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경제만이 아니다. 행복의 소재는 여기저기에 무수히 널려 있다. 그런데 행복해질 수 있는 그 가슴을 우리는 잃어가고 있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라고 지금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 한 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제 논리에 모든 것이 묻혀 버리고 있는 현실에서 경제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의 열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또 그 경제 논리에 의해 개발을 하고 그 개발에 의해 원래 그 땅의 주인들은 갈 곳을 잃고 죽거나 혹은 떠나 가 버린 자리가 얼마나 메마를까?


그런데 지금 나라에서는 4대강 사업이라는 논리로 하루아침에 마치 4대강에 큰 난리라도 날 것 같이 긴장감을 조성하고 또 4대강을 개발해야 나라가 잘 될 것처럼 홍보하고 그렇게 반대하는 대다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왜 인간은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자연은 재생과 정화의 힘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 재생의 힘과 정화의 힘에 자꾸 딴죽을 건다. 가만히 그대로만 두면 스스로 면역력이 생기고 또 스스로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꾸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한다. 자연을 거스르면서 까지 인간이 자연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것이 오히려 자연에게는 독이 되는 지도 모른 채…….

또 요즈음 보금자리 주택 개발한다는 명목하에 애초에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분들의 의지와는 상관없고 또 한마디 상의도 없이 공권력을 가진 자들 마음대로 개발을 약속하고 분양을 약속해 버린다. 그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시던 분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 것을 다르게 말하면 개발이 시작되면 결국은 그곳에서 살던 분들은 터전을 잃고 나와야 된다는 결론이다. 이 모든 것이 다 경제 논리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야기 하면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고 또 모든 것이 돈이면 다 된다는 인간들의 경제 논리로 모든 것을 밀어붙인다.

숲도 없에고 바다도 메우고 산도 깎고 강 도 파고 모든 것이 인간의 이기주의에 의해 자연의 동의 없이 경제논리로 해결하려 든다.  지구는 하나 뿐 인데. 인간은 지구를 갉아먹고 있다. 지구의 유효기간이 언제까지 인지는 모르지만 지구의 인내력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인간의 오만한 이기주의가 결국은 인간의 종말을 앞 당길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인간도 결국은 자연의 일부분 임을 인정하고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공유물 임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자연은 인간을 내치게 될 것이다. 지금 공권력을 가지고 그동안 자신들이 주인 인냥 행동하던 인간들도 마찬가지 결국은 자연에서 퇴출 될 것이다…….